[단비현장] 되돌아본 ‘남성성을 살린 농기계 모터쇼’ 논란

농경문화 예술제에서 ‘남성성을 살린 농기계 모터쇼’를 하겠다며 여성 레이싱 모델을 배치하려다 성차별 논란이 일자 모델을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제천시가 발표를 뒤집었다. 모델 초청을 취소하면 팬들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천시는 모터쇼에 모델들을 참여시키는 대신 의림지를 배경으로 한 모델 촬영행사를 진행해 당장 논란거리는 피했다.

하지만 제천시는 여성단체가 제기한 비판에도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못 느낀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섭외한 모델들에게 클럽 분위기에서 춤을 추는 행사에 관중과 어울리라고 하기도 해 모델의 직업과 역할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을 살린’이라는 홍보 문구 등으로 문제가 된 농경문화 예술제 포스터.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을 살린’이라는 홍보 문구 등으로 문제가 된 농경문화 예술제 포스터.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팬 반발 우려돼 취소 못 해”

충청북도 제천시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는 지난 14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됐다. 논란이 된 ‘농기계 모터쇼’는 여성 모델 없이 진행됐다. 행사장에는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농기계 12대가 제원을 적은 입간판과 함께 늘어서 있었다. 자사 제품을 홍보할 직원들도 배치됐다. 제천시의 처음 계획대로라면 예술제 두 번째 날인 15일부터 이틀 동안 모델 10명이 두 조로 나뉘어 번갈아 가며 사진 촬영에 임할 예정이었다.

행사장에 모델 없이 대형 농기계들만 서 있다. 윤준호 기자
행사장에 모델 없이 대형 농기계들만 서 있다. 윤준호 기자

행사를 이틀 앞둔 지난 12일 <단비뉴스>는 제천시가 홍보 등에 사용한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과 ‘남성성을 살린 농기계 모터쇼’ 같은 표현과 레이싱 모델 홍보에 치중한 포스터 등에 성차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커지자 이튿날 제천시는 모델 초청을 취소했다고 밝혔고, 이런 내용은 <연합뉴스> 등을 통해서도 보도가 됐다.

하지만 하루 만에 제천시는 섭외된 모델을 그대로 부르기로 다시 방침을 바꿨다. 모델을 보러 전국에서 오는 팬들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행사를 계획한 박준범 제천문화재단 계획공모관광사업단장은 “팬들이 숙소를 잡고 교통편도 예약했기 때문에 취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현실적인 부분이 있어서 문제 되는 요소를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농기계 모터쇼에는 레이싱 모델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델들은 농기계 대신 의림지를 배경으로 촬영행사에 나섰다. 현장에는 모델들을 찍으려 몰려든 팬 수십 명으로 북적였다. 모델은 예정된 10명이 아니라 8명만 참여했다. 2명이 빠진 이유에 대해 박 단장은 “일정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모델들이 농기계가 아니라 의림지를 배경으로 서 있다. 팬 수십 명이 모였다. 윤준호 기자
모델들이 농기계가 아니라 의림지를 배경으로 서 있다. 팬 수십 명이 모였다. 윤준호 기자

보도 이후 ‘남성성을 살린 농기계 모터쇼’ 같은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느냐는 질문에 김대영 제천시 관광미식과장은 “남성성을 문제 삼는 비판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올바른 비판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모델에게 관객과 춤추라고 한 제천시

시민들은 대체로 농기계 모터쇼에 레이싱 모델을 배치하며 남성성과 연결하는 것은 농경문화 예술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자녀들과 함께 온 김세환 씨는 “가족 단위로 많이 놀러 왔을 것 같은데 행사가 남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제천시 주민인 25살 여성은 “농기계 하면 남성성이 떠오르는 줄도 몰랐다”며 “농사는 남자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온 주민이 참여했을 텐데 남성성을 내세우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행사장 입구에는 농기계와 남성성을 연결한 표현을 비판하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렸다. 윤준호 기자
행사장 입구에는 농기계와 남성성을 연결한 표현을 비판하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렸다. 윤준호 기자

제천시가 레이싱 모델들을 참여시키려던 행사는 농기계 모터쇼뿐만이 아니었다. 제천시는 예술제 두 번째 날인 15일 저녁 열리는 'EDM 파티'(Electronic Dance Music) 행사에 섭외한 모델을 모두 참여시키려 했다. DJ가 클럽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관중이 춤을 추면 여기에 모델도 참여해 분위기를 돋운다는 계획이었다.

박준범 단장은 “모델이 포즈 취하고 사진 찍는 정도가 대부분이어서 팬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며 “일반인과 어울리게 하는 점 때문에 (모델들이) ‘자기들 안전은 어떡합니까’라고 해서 안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모델들을 저녁 행사에 참석시키려고 설득하느라 애를 썼다는 설명이다.

레이싱 모델 기획사인 ‘미스디카’의 정재훈 대표는 부대행사 참여 요구는 “흔하지는 않아도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 “그렇더라도 보통 자리만 지키고 있게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관객과 함께 춤추는 행사에 모델을 동원하는 행사가 적절한지 질문을 거듭하자 박준범 단장은 “어떻게 모델에게 강제로 참여하라고 하겠느냐”며 “‘이런 행사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자율적, 개별적으로 오라’고 안내한 것일 뿐 실제로 몇 명이 참석하는지도 모른다”고 해명했다.

당초 계획에 있던 EDM 파티 행사에는 모델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윤준호 기자
당초 계획에 있던 EDM 파티 행사에는 모델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윤준호 기자

저녁 파티 행사에 섭외된 모델이 공식적으로 모두 참여한다는 계획은 지난달 28일 제천시청에서 열린 실행계획 보고회에서도 보고됐다. 김창규 시장을 비롯한 간부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이 참석해 이와 같은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았다. 보고회에는 ‘남성성을 살린’ 등의 표현이 적힌 발표자료도 사용됐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한 김창규 시장(좌)과 이정임 의장. 영상자료 제천시의회
지난달 28일 열린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한 김창규 시장(좌)과 이정임 의장. 영상자료 제천시의회

보고회에 참석한 김수완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EDM 파티’에 대해 “영화제가 끝나면 배우들이 관객과 호흡하는 자리가 있듯이 그런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했었다”고 말했다. 농기계 모터쇼에 대해서는 “보고자가 모터쇼를 ‘킬러콘텐츠’라며 강조해 설명하긴 했지만, 남성성을 살린다고는 하지 않았다”며 “남성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그 시선이 문제가 되는 만큼, 그 말이 들렸다면 그 자리에서 반드시 지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모델은 모델로서 존중해야”

김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네트워크팀장은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모델은 전문적인 모델로서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며 “모델을 눈길을 끌 장치로 여기면서 화제성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제천시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기계 모터쇼에 대해서도 “시민사회 지적은 ‘모델의 복장이 어떻다’는 뜻이 아니라 남성성을 살린다며 여성 모델을 도구화한 의도와 맥락이 여실히 드러나 문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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