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은정 KBS 해설위원

“2014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포착했어요. 제가 2010년에 갔을 때는 여름이었는데도 그런 광경을 못 봤거든요. 지구온난화가 4년 사이 많이 진행된 겁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맺어진 것도, 한국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죠.”

지난 10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이은정(53) <KBS> 해설위원이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 전문기자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남극과 북극을 합쳐서 네 번이나 다녀온 이 위원은 “혼란한 상황에서 전문기자는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뉴스룸(편집·보도국)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와 시민을 잇는 심층보도를 추구하되 자칫 지루해지지 않도록 창의적 전달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생명윤리 전공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위원은 2007년 <KBS>로 옮겨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해 왔다. 

남극·북극 4번이나 믿고 보낸 이유는 

이은정 KBS 해설위원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남극 취재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다. 윤준호 기자
이은정 KBS 해설위원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남극 취재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다. 윤준호 기자

이 위원이 극지방에 처음 간 것은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을 취재한 2010년이다. 이를 시작으로 남극에 세 번, 북극에 한 번 다녀왔다. 첫 방문 때만 해도 극지방의 생태계와 자원을 한국이 얼마나 탐사했는지가 언론의 관심사였으나 2014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후위기 영향으로 빙하가 녹은 모습을 우리 연구원들이 목격한 것이다.

빙붕은 땅에 붙어 바다로 뻗은 얼음덩어리로, 남극 면적의 10%를 차지한다. 난센빙붕은 한국의 두 번째 남극연구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km) 떨어져 있다. 2014년 빙하 녹은 물이 흐른 뒤 2016년에는 빙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위원은 2018년 남극의 빙하 붕괴를 본격 취재했다. 세종기지가 있는 서남극 지역의 란센빙붕 붕괴 현장이었다.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으로 1시간 동안 방영된 ‘남극 진출 30년, 무너지는 얼음 대륙’이 그 성과다. 

지난 8월에는 이 위원의 후배인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가 ‘고장 난 심장, 북극의 경고’를 보도했다. 한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고 북극곰 대신 추위에 약한 모기떼가 나타난, 북극 온난화 실태를 생생하게 담았다.

2018년 6월 방송된 ‘남극진출 30년, 무너지는 얼음 대륙’. KBS 갈무리
2018년 6월 방송된 ‘남극진출 30년, 무너지는 얼음 대륙’. KBS 갈무리

“남북극에도 믿고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전문기자입니다.” 

이 위원은 피디(PD)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시사기획 창’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기자가 심층보도 주제를 찾는 데 1달, 공부하는 데 1달 걸린다면 전문기자는 평소 연구한 주제는 일주일 정도만 취재하면 된다”며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천착하고 있으면 이런 긴 호흡의 보도를 할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보도 늘었지만 새로운 접근 필요 

기후위기의 최전선이 극지방이라면 기후위기를 보도하는 최일선에는 전문기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KBS>는 2021년부터 국장급 부서인 재난방송센터에 기후위기대응팀을 만들었다. 이 팀에는 기상전문기자가 4명 있다. 기후위기 의제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의도다.

이 위원은 “언론이 기후위기에 무감각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며 <KBS> 보도를 살펴봤을 때 기후변화 관련 뉴스의 증가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하지만 뭔가 가슴에 와닿는 보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 같다”며 식상하지 않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이후 기후변화 관련 KBS 보도량 추이. 이은정 해설위원이 KBS 뉴스홈페이지에서 '기후변화' 검색어를 넣어 취합했다.
2010년 이후 기후변화 관련 KBS 보도량 추이. 이은정 해설위원이 KBS 뉴스홈페이지에서 '기후변화' 검색어를 넣어 취합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보도할까’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대응팀에서 올해 의미 있는 보도를 했어요.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를 달아서 돌아다녀 보니까 아파트단지보다 쪽방촌이 훨씬 뜨겁게 나오는 거예요. ‘더위는 불평등한 재난’이라는 걸 보여준 겁니다.”

2022년 7월 18일 KBS ‘뉴스9’에 보도된 폭염 격차 리포트. 건축 재질이 달라 같은 더위에도 쪽방촌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고, 에어컨이 없는 소외계층은 재난 대응도 어렵다. KBS 갈무리
2022년 7월 18일 KBS ‘뉴스9’에 보도된 폭염 격차 리포트. 건축 재질이 달라 같은 더위에도 쪽방촌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고, 에어컨이 없는 소외계층은 재난 대응도 어렵다. KBS 갈무리

기온이 높아지면 보건, 농업, 산림,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언론은 기후위기가 시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야별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세밀하게 취재해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위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갈지’ 창의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난무할 때 정확한 정보로 방향 제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문기자의 역할은 더 뚜렷해졌다. 코로나19는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 감염증이었다. 두려움이 확산하는 만큼 가짜뉴스도 기승을 부렸다. 국내에서는 소금물이 코로나19를 막는다며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소금물을 뿌리다 집단감염이 일어났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말라리아약을 코로나19 치료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KBS>는 팩트체크를 활성화하고, 매일 낮 시간대 의학전문기자를 특보에 출연시켜 적극 대응했다. 

“감염병 보도는 초기 상황이 중요합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전파되지 않는다고 잘못된 정보가 퍼져서 환자가 급증했어요. 과학적으로 바이러스는 공기 중 전파가 안 되는 건 맞는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어요. 병실에 있던 가습기에서 나온 수증기 방울에 바이러스가 붙어 다녔고 환기구를 넘어 옆 병실로도 전파된 거였죠.”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이은정 위원의 특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윤준호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이은정 위원의 특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윤준호 기자

이 위원은 “전문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지의 상황과 초기 혼란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뉴스룸의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외 연구단체와 보건기관 취재도 전문기자가 직접 하고, 다른 나라의 전문기자와 협업해 정보를 교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전문기자가 되는 세 가지 경로 

이 위원은 한국에서 전문기자가 되는 데 세 가지 경로가 있다고 소개했다. 석박사 학위를 받고 전문가로서 언론사에 들어가거나, 학부에서 관련 전공을 한 뒤 해당 분야 기자로 오래 일하며 전문기자가 되는 경우, 혹은 전공과 관련 없이 특정 분야를 오래 취재하면서 전문성을 쌓는 경우다. 

이 위원은 “문과 출신이지만 과학부처를 오래 출입하면서 전문기자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분야 석박사라고 하더라도 학위 과정에서 배운 지식보다는 대학원에서 알게 된 전문가 인맥과 논문을 써본 경험이 취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학위와 상관없이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보도하는 사람이 전문기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정 위원이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이은정 위원이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김창용(29·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씨는 “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기자가 생소한 분야를 취재할 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가”라고 질문했다. 이 위원은 “전문기자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모를 수밖에 없고, 전문가를 찾아가 길고 자세히 설명을 들으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예지(32·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씨는 “신입 기자들에게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가운데 어느 길을 추천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위원은 “(신입일 때는) 사회와 관련 있는 보도를 많이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추천한다”고 답했다. 그는 “전문기자라 하더라도 꼭 수십 년 한 분야만 한다기보다 자기 핵심은 가지고 있고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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