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유휴 인력 대상 ‘생산적 일손봉사’ 동행취재 

한 달에 한두 번만 봉사를 하자. 35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며 김상겸(76) 씨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평생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한 곳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가지를 쳐줘야 하는 과수원도, 무를 뽑아야 하는 밭으로도 달려갔다. 그렇게 일손봉사를 한 지 17년이 지났다. 총 봉사시간은 2600시간을 넘었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김 씨의 봉사에 대한 마음가짐은 한결같다.

“정년퇴직하고 놀기보다 힘쓸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지난 11일 오후 1시 충북 제천시 모산동 농장에서 알타리무 수확을 돕는 김 씨를 만났다. 이날 김 씨는 김장철을 맞아 바빠진 알타리무 농가에서 수확을 도왔다. 김 씨는 17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베테랑 봉사자다. 그는 차양 모자에 운동복과 안전화를 갖추고 장갑을 낀 채 능숙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봉사 업무는 1500평 밭에 두 줄로 심어놓은 알타리무 수확이다. 허리를 굽혀 한 번에 알타리무 9개 정도를 뽑고 수레에 옮겨 담는다. 수레 하나가 가득 차면 무를 농장 입구로 옮겨 손질한다. 시든 이파리를 제거한 뒤 15kg 상자가 가득 찰 때까지 담는다. 깔끔하게 택배 상자를 테이프로 포장하면 일이 마무리된다.

지난 11일 제천시 모산동 농장에서 알타리무를 수확 중인 봉사자 김상겸(76) 씨. 나종인 PD
지난 11일 제천시 모산동 농장에서 알타리무를 수확 중인 봉사자 김상겸(76) 씨. 나종인 PD

하루 4시간 일손 보탤 수 있게…은퇴자 사회 기여 돕는 일손봉사

김상겸 씨는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손을 빌려주는 충청북도의 ‘생산적 일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를 신청한다. 한 번 봉사를 오면 기본 4시간 정도 일을 돕는다. 봉사에서 주로 맡는 일은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수확 뒤 밭의 비닐을 제거하고 다시 까는 일이다. 김 씨는 한번 일할 때 4시간 정도만 일하니 육체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할 지자체는 봉사가 끝나면 ‘봉사 실비’로 2만 5천 원을 지급한다. 

지급액이 적정하냐고 묻자 김 씨는 “돈 받고 하는 건 봉사가 아니”라며 “돈 때문이면 기존에 해왔던 전기 관련 현장 일을 해 더 벌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손을 못 구한 농가를 돕는 것이 중요하지 경제적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김 씨는 제천 시내에서 거리가 먼 덕산·수산면까지 봉사를 나간다. 시내에서 먼 이런 곳들은 일당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일꾼을 구하기 어렵다. 김 씨 같은 봉사자가 더 필요한 곳이다. 

이날 김 씨 외에 봉사를 나온 은퇴자 중에는 남재현(68) 씨도 있었다. 원래 건설업에 종사하던 그도 은퇴 후 바쁜 농가에 일손을 조금이라도 보태고자 봉사를 신청했다. 이제 서너 번 봉사를 다녀본 그는 주로 여름철엔 블루베리, 가을에는 알타리무 등의 수확을 도왔다. 남 씨는 봉사를 신청하고 나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오늘의 작업이 무엇인지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농사일 돕는 건 익숙해서 어렵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11일 농장주 변정섭 씨와 봉사자 김상겸 씨가 알타리무 포장 작업을 하는 모습. 나종인 PD
11일 농장주 변정섭 씨와 봉사자 김상겸 씨가 알타리무 포장 작업을 하는 모습. 나종인 PD

봉사를 할 사람은 근처 자원봉사센터나 본인이 사는 지역 동, 면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김 씨는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봉사 일감 관련 게시글을 보고 신청했다. 봉사단체 총무가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을 농가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행정복지센터로 신청한 사람에게는 담당 공무원이 일정을 조율한 뒤 봉사 날짜를 정해 알려준다. 

일손봉사는 단체로도 신청할 수 있다. 김 씨는 “적을 때는 승합차 한 대에 사람을 모아서 가고 많을 땐 대형 버스 2대에 사람을 태우고 봉사를 간다”고 말했다. 단체로 봉사를 신청하는 조직으로는 제천시 새마을회, 의용소방대 등 연령대가 높은 사람이 모인 단체들이 주를 이룬다. 

일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전 연령대에 퍼져있지만 대체로 50대 이상 신청자가 많다. 지난해 충청북도 전체의 일손봉사 참여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70%를 넘게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50대가 59%로 가장 활발히 봉사에 참여했다. 40대는 18%, 30대 9.6%, 20대는 4.7%로 연령이 낮을수록 참여율이 낮았다.

“인건비 부담 덜어주니 농가에도 큰 도움”

봉사자들이 일한 농장의 주인 변정섭(65) 씨는 2년 전부터 일손봉사자를 받고 있다. 1달에 2~3회 정도 신청한다. 변 씨는 블루베리나 알타리무, 옥수수를 수확하고 심는 시기에 가장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일이 많을 때는 12명~13명 정도 되는 봉사자를 하루에 받기도 한다. 블루베리 수확 시기엔 열댓 명씩 2~3일 정도 지원을 와야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2년 전부터 일손봉사자를 받고 있는 농장주 변정섭 씨. 사진 나종인 PD
2년 전부터 일손봉사자를 받고 있는 농장주 변정섭 씨. 나종인 PD

변 씨는 일손봉사가 농사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비용이 들지 않는다. 봉사자는 인건비 대신 소정의 봉사 실비를 받는다. 실비에는 교통비와 점심값이 포함되어 있는데, 전액 지자체가 부담한다. 봉사 현장까지는 봉사자가 알아서 이동한다. 농가에서는 음료수나 빵 등 간식거리만 준비하면 된다. 

봉사자를 받는 절차도 복잡하지 않다. 처음 대상 가구로 신청할 때만 사업자등록증 등 세 종류의 서류를 내고 기다리면 된다. 이후 지자체의 봉사센터나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봉사자가 연결된다. 보통 전화로 봉사자와 농장 쪽이 작업일정을 조율한다. 

농장 작업은 네 시간 만에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변 씨는 봉사자를 받지만 동시에 4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별도로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손봉사 사업에 대해 “현재 하루 4시간씩만 봉사하게 돼 있는데, 8시간 정도로 늘어나면 농가엔 큰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봉사시간을 4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건 쉽지 않다. 충북도 지원조례에 봉사시간이 4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제천시는 일부 봉사자가 봉사활동 외에 별도의 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 4시간 이상의 봉사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충북도는 봉사시간을 늘리면 봉사 참여자 수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봤다. 농가 입장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길면 좋겠지만, 봉사자는 8시간씩 봉사를 하는 게 기본 요건이라면 참여를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량 90% 달성…내년엔 ‘일자리’ 성격 강화

일손봉사 사업 홍보 포스터. 내년부터는 일자리 요소를 강화한다. 충청북도 제공
일손봉사 사업 홍보 포스터. 내년부터는 일자리 요소를 강화한다. 충청북도 제공

2016년부터 충북도는 일손봉사 사업을 추진했다. 일손봉사 사업의 취지는 인력난을 겪는 농가와 중소기업에 미취업 청년, 은퇴자 등을 연결해 일손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충북도는 지난 14일 현재 올해 봉사자 목표 인원인 20만 명의 90%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연말까지는 충분히 목표 인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목표 인원이 달성된 뒤에 신청한 봉사자는 봉사 실비를 받을 수 없다. 충북도가 설정한 목표 인원만큼의 예산만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신 1일 4시간의 봉사시간은 계속해서 인정된다.

일손봉사 대상지는 농가와 기업이다. 충북도는 전체 봉사자의 90%가 농가로 가고 10%만 기업에서 일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기업에서는 정기적으로 일을 도우면서 생산성을 높이길 원하는데 봉사자들이 그런 수요를 채워주긴 어렵기 때문이다. 봉사자 김상겸 씨는 “기업 봉사자는 제천시 인근 농공단지 바이오 회사에서 제품 포장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공무원들이 청주시 자두 농가를 찾아 일손봉사를 하는 모습. 충북도는 관내 공무원들에게 일손봉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충청북도 제공
올해 5월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공무원들이 청주시 자두 농가를 찾아 일손봉사를 하는 모습. 충북도는 관내 공무원들에게 일손봉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충청북도 제공

내년부터는 일손봉사 사업에 신규 일자리 프로그램이 추가된다. 올해까지의 일손봉사는 1일 4시간 참여한 뒤 소정의 실비만 받는 단발적인 ‘봉사체험’에 중점을 뒀다. 내년부터는 농가나 기업에서 1일 4시간 고정적으로 일하게 하는 ‘도시농부’, ‘도시근로자’ 사업도 함께 병행된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는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일하게 될 예정이다. 하선미 충북도 생산적일자리팀장은 “일손봉사에 많은 분이 참여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며 “신규 사업에도 많은 분이 참여해서 도내 농가와 기업에 필요한 인력 공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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