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

“2012년 겨울, 시내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고등학생은 깜빡 잠에 빠져버렸고 한 여자아이가 나오는 이상한 꿈을 꿨다. 그런데 잠에서 깼는데도 꿈에서 나온 그 아이는 옆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아이는 학생의 귀에 속삭였다. “언니, 이번에는 꼭 내려야 해.” 학생은 무서워하며 아무 정류장에서 내려버렸다. 다음날 뉴스에는 학생이 탔던 그 버스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이 실렸다.”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가 기획한 인터랙티브 전시극 ‘요상한 나라의 Y’ 전시물. 관람객들은 자신이 겪거나 들은 괴담을 이곳에서 공유할 수 있다. 현경아 기자

지난 19일에 찾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관광센터 3층에는 영월에서 수집된 11가지 괴담이 되살아나 있었다. 세트로 만들어진 버스 정류장에서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나왔다. 조선 시대 때부터 전승되어 온 옛 괴담부터, 지역민이 직접 겪은 현대 괴담이 한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배우는 푸른 조명 아래에서 노래하고 연기를 펼쳤다. 영월군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가 기획한 전시와 연극 ‘요상한 나라의 Y’다.

베짱이처럼 천천히, 여유롭게

공연을 연출하고 배우로 활동하는 임용수(39) 씨, 공연 기획과 극작을 맡는 손민지(37) 씨 부부는 2017년 2월에 영월군으로 귀촌하면서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를 설립했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처럼 여유롭게 즐기는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다. 영월로 귀촌한 6명의 정규 조합원과 공연 때마다 운영되는 프로젝트 그룹까지 합하면 10명 내외의 연극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 제자들이 영월에 함께 귀촌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의 연령대로 이루어진 청년 집단이다. 이들은 대부분 경쟁이나 극단 활동에 지쳐 있었다. 조합원 김세정(25) 씨는 “(서울에서 활동할 때에는) 좋지 않은 문화를 가진 극단이 여전히 있었다”며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극단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 귀촌했다고 말했다.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에서 연극을 연출하고 연기하는 임용수 씨(왼쪽), 공연을 기획하는 극작가 손민지 씨(오른쪽). 현경아 기자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에서 연극을 연출하고 연기하는 임용수 씨(왼쪽), 공연을 기획하는 극작가 손민지 씨(오른쪽). 현경아 기자

귀촌하기 전 임용수 씨는 “서울, 부산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비슷한 공연을 하면서 예술가로서 영감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며 2015년 문화예술 교육 강사로 초청받아 1년 동안 영월에서 지낸 경험이 귀촌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수도권보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즐기며 예술을 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시 영월에는 전문 극단이 없었다. 영월의 ‘1호 극단’이 되어 활동 영역을 넓혀보겠다고 생각했다.

영월은 이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영감도 주었다. 극작가인 손민지 씨는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1년에 한두 편도 창작하기 어려웠지만 영월에서는 3년 동안 20편 가량을 작업했다”고 했다. 귀촌한 후에는 지역 이야기에 매료됐다. 유배된 단종의 이야기나, 광부와 뗏목을 모는 사람을 일컫는 떼꾼처럼 영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발견하게 되면서다.

동료, 제자들과 함께 귀촌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서울에서 단체로 내려온 청년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지역민에게 이들은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영월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던 문화예술계 종사자의 일거리를 빼앗아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임용수 씨는 “3년을 버티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지인에게 귀촌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지역에 돌려주는 지역 이야기

지난 4월부터 지난달 19일까지 영월관광센터에서 열린 인터랙티브 전시극 ‘요상한 나라의 Y’는 잊혀진 지역 이야기를 수집해 콘텐츠로 만든 프로젝트다. 예술가가 단독으로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관람객이 함께 창작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영월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지역민 5명과 함께 매주 일요일에 예술가들과 모여 10주 동안, 한 주에 하나씩 이야기를 수집했다. 잊혀진 이야기나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50개의 이야기 가운데 10개를 골라서 전시물로 제작했고, 거짓 괴담 1개를 섞어 11개의 이야기를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거짓 괴담이 무엇인지 찾아내거나 자신이 가진 괴담을 풀어놓으면서 창작 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지역민 수집가의 이야기 50개 가운데 3개의 이야기는 창작극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3개의 이야기 중 하나인 ‘꿈속 손님’은 유배지에서 죽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의 이야기를 풀어낸 연극이다.

창작극 ‘꿈속 손님’의 한 장면. 신하 엄흥도로 분장한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 제공.
창작극 ‘꿈속 손님’의 한 장면. 신하 엄흥도로 분장한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 제공

공연예술창작집단 베짱이의 창작극 대부분은 지역 고유 문화를 드러낸다. 지금은 없어져 지역민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우연다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탄광문화권의 특징을 반영해 연출한 광부의 이야기가 그 예다. 손민지 씨는 “지역이 주는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으니 이야기를 지역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민에게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외지인에게는 영월에 관한 흥미를 일으켜 관광이나 정착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손 씨는 “지역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지극히 평범한 예술의 가치

손민지 씨는 예술을 평범한 것으로 정의한다.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 그러나 서울에서는 평범한 예술이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손 씨는 서울에서는 유명한 작품을 해야만 성공한 배우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며 “무언가 특별한 것만 예술이라고 느끼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예술 전공자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배우의 경쟁 역시 서울에서는 치열하다. 통상 오디션을 통해 선택받아야 연기를 할 수 있는 시스템 탓이다.

그러나 손 씨는 지역에는 예술가로서 순수한 창작욕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예술가는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지역민이 함께 창작의 주체가 되어 소통할 기회가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 즉 예술의 목적을 누구나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지역 예술의 가능성을 본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